시계상식

제목[시계칼럼] '스위스 시계는 진화한다'2019-10-25 13:47:46
작성자 Level 10
[주간조선 2004-05-26 21:58] 

지난 4월 26일 제네바 경매장에서 스위스 시계 제조회사 파텍필립의 손목시계가 사상 두 번째로 높은 60억원에 팔렸다. 창업 150주년을 기념해 1989년 만든 4개 중 하나다. 역대 최고 경매가는 1999년 역시 파텍필립 시계가 기록한 1100만달러(약 127억원)다. 400년 역사의 스위스 시계가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뉴스가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시계의 총액 116억달러 중 60%가 스위스산이다. 고급 브랜드 시장에서 오메가·롤렉스 등을 앞세운 스위스제의 비중은 더 커진다. 스위스 시계가 최고 자리를 유지하기까지는 많은 위기를 넘겼다. 휴대전화·컴퓨터로 시간 확인이 가능해져 이제 시계가 그 존재 가치를 위협받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스위스 시계는 근본적인 위기를 맞은 것일까? 

“시계는 이제 단순히 시간만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다. 시간은 휴대전화와 컴퓨터로도 알 수 있다. 시계는 고급 맞춤형 액세서리로 자리잡고 있다.”(피아제 필립 레오플드 메츠거 회장)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계는 보석·장신구처럼 유지돼 나갈 것이고 전자 시계는 컴퓨터 기능과 신용카드 기능 등을 내장한 다기능 시계로 발전할 것이다.”(스위스 시계산업연맹 장 다니엘 파시 의장) 

스위스 제네바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시계 간판이다. 오메가·롤렉스·태그호이어·론진…. 제네바의 밤을 화려하게 밝히는 것도 형형색색으로 불켜진 시계 간판이다. 제네바는 스위스 시계의 고향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을 피해 제네바에 몰려든 금 세공업자들이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1601년에 시계 제조업자들이 길드(상호 부조 조합)를 조직했고 1790년에는 시계 6만개를 수출했다. 제네바 인근 주라 산맥 일대에는 오드마르스 피게, 예거 르쿨트르, 브리겟 등 스위스 유명 시계 제조회사가 모여 ‘워치밸리(Watch Valley)’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스위스 시계의 고향’ 제네바는 지난 3년간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내 고가제품 영업 저조, 지난해 사스·이라크전으로 인한 해외 여행 감소,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구매 저하 등 악재가 겹치면서 시계 수출이 줄었기 때문. 


스위스 시계산업연맹(FH) 장 다니엘 파시 의장은 “판매 시장을 전세계 지역별로 다변화하는 동시에 최고 품질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모델 개발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위스 시계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전통 위에 첨단 기술 조화를 통한 최고의 브랜드 유지, 다양한 마케팅 전략, 조직 감축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시계의 패션화’라는 기본 전략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최고의 위치에서도 끊임없이 시장을 분석하고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한 결과다. 


최고 위치 서고도 꾸준히 시장 분석 


‘시계의 패션화’는 스와치가 주도하고 있다. 100달러 이하의 저가 패션 시계를 주로 만드는 스와치는 빠르면 3개월, 보통 6개월에 한 번꼴로 새 모델을 내놓는다. 매년 봄·가을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을 가진 신제품이 100여개씩 출시된다. 스와치 그룹 하이에크 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시계를 가질 수 있다”며 “스와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계에 패션이라는 개념을 접목시켰기 때문”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오메가·롤렉스 등 전통의 브랜드들도 이제 패션을 강조하는 추세다. 새로운 모델을 만들지 않고 옛 모델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한 롤렉스도 최근 검은색 대신 초록색 테두리를 사용한 모델을 선보였다. 바젤 박람회에서는 푸른색과 검은색 바탕의 스포츠 시계를 내놓았다. 

스위스 시계는 1970~1980년대에도 중저가에 정확성을 겸비한 일본 전자시계의 출현으로 큰 위기를 맞은 바 있다. 당시 고가의 스위스 시계는 수출량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 때 스위스 시계를 구한 것이 스와치였다. 부품 수와 공정을 줄여 비용을 낮추고 패션을 강조한 시계로 젊은층을 공략, 수출을 늘려간 것이다. 고가 브랜드들도 이에 힘을 얻어 일본의 저가 전자시계 공략에 대해 ‘고급화’ 전략으로 차별화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리퀴드 메탈’ 등 첨단소재 도입도 

이처럼 일본의 전자시계, 9·11테러, 사스 등 숱한 위기를 헤쳐 왔던 스위스 시계는 최근 휴대전화·PDA·컴퓨터의 등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점은 스위스 시계 업계도 인정하고 있다. 바젤 박람회에서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피아제의 필립 레오플드 메츠거 회장은 “시계는 이제 단순히 시간만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다”라며 “시간은 휴대전화와 컴퓨터로도 알 수 있다”고 밝혀 간접적으로 스위스 시계가 받고 있는 도전을 인정했다. 

미국에서는 시계 제조회사 ‘파실’ 등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무선 서비스를 이용해 뉴스·주식 등 각종 정보를 다운받을 수 있는 ‘인터넷 스마트 손목시계’를 만드는 등 시계의 진화가 진행 중이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월드컵대표팀 감독이 차서 유명해진 스위스 시계 태그호이어가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특수 합금 소재 ‘리퀴드 메탈’을 초정밀 디지털 시계에 사용하는 등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들도 첨단 기술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FH 장 다니엘 파시 의장은 “아직까지 시계 매출이 줄고 있지는 않다”며 “하지만 시계는 컴퓨터 기능과 신용카드 기능 등을 내장한 다기능 시계로 발전할 것이고 스위스 시계 업계는 이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와치사 한국 현지법인 스와치코리아의 강제우 사장은 “보석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스위스 명품 시계의 인기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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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시계의 유명 브랜드 

“와~, 스와치 그룹에만 브랜드가 18개!” 



1983년 ASUAG와 SSIH라는 2개의 스위스 시계 제조회사가 합병함으로써 출범한 스와치 그룹은 현재 18개의 브랜드가 모여 있다. 연간 1000만개 이상의 시계 완제품을 생산, 전세계 시장의 22~25%를 장악하고 있다. 스와치 그룹의 대표 브랜드로는 스와치, 브리겟, 오메가, 라도, 론진, 티쏘, 쟈크드로, 블랑팡 등이 있다. 

스위스 리치몬트 그룹은 카르티에,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바쉐론 콘스탄틴 등 시계·보석 브랜드 18개를 거느린 럭셔리 브랜드다. 

그밖에 롤렉스, 태그호이어, 파텍필립, 브라이틀링, 프랑크 뮬러 등이 잘 알려진 ‘made in Swiss’다. 

제네바=김승범 주간조선 기자(sbkim@chosun.com)